• 최종편집 2024-07-19(수)

[김경구의 바람소리]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세상

-어느 손이 더 ‘더러운 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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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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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민의소리] 김경구 기자= 노자 도덕경에서 치국약팽소선(治國若烹小鮮: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은 것)과 같이 정성을 다하고 세심해야 하는데 조금만 틈(虛)과 화(禍)가 보이면 분구힐지강경(糞狗詰之糠犬:똥 묻은 개들이 겨묻은 개를 나무라며 짓어 댐)이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다.
 
흔히 쓰는 말로서 누구나 아는 사자성어인데 똥묻은 개 자신은 더 큰 흉허물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른체하고 남의 작은 흉을 본다는 뜻이다.
 
요즘은 이 속담대로 세상 세태가 ‘강견(겨 묻은 개)’을 향해 짖어대는 ‘분견(똥묻은 개)’의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어찌하여 이런 기막힌 세태가 됐는가?
 
왜 일까? 분견이 강견을 손가락질하고 나무라는 행위가 당연시 된 것으로서 그래야만 분견의 구린내가 희석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실정은 아닌지. ‘제 똥 구린 줄은 모르고 남의 똥 구린내만 손가락질을 하는 것’과 같다.
 
이제 뭐 똥 묻은 개보다 겨 묻은 개가 겨가 바닥에 떨어져 눈에 잘 띄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강견이 쫓겨나고 분견이 주인 옆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비통한 상황이 세상 곳곳에서 거듭되다 보니 불쌍한 쪽은 겨 묻은 개보다 주인이다.
 
주인 자신도 온통 똥 투성이가 되는데도 이미 마비된 후각 때문에 알아채지도 못하는 것이다.
 
불법 영화를 제작만 해놓은 상태인데 어떤 극장에서 이를 불법 복제해 상영한 일이 있었다. 제작사는 상영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상영관은 제작사가 불법 영화를 만들었으니 법원이 제작사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상영관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러운 손(Unclean Hands)’이라는 오랜 판례 이론이 있다. 즉 법의 도움을 받으려면 깨끗한 손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손이 더러운 자는 법이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제작사는 불법영화를 제작했으므로 비록 상영관이 제작사의 저작권을 침해했어도 법원으로서는 더러운 손을 지닌 제작사의 청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다. 잘못이 있는 사람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 적반하장 아니냐고 하면 그것으로 논쟁은 끝나거나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꾸짖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허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지적하는 쪽의 사소한 잘못을 들춰내, 이른바 물 타기를 시도할 수 있다.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 등 제3 지대가 자칫 똥이나 겨나 도토리 키재기 아니냐고 넘겨버리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정의가 실종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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